칼뱅의 시편강해 (11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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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증거가 기이하므로 내 영혼이 이를 지키나이다 (시편 119편 129∼136절)

박건택 옮김

이 설교는 1553년 5월 14일에 행한 설교[CO, XXXII, 675]이다. 이 설교문에 붙여진 소제목과 괄호 및 주(註)는 원문에 없는 것이지만 독자의 편의를 위해 첨가하여 번역, 편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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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순종으로 반응해야 할 기이한 말씀
이 여덟 절 중 첫 구절에 담긴 말씀이 우리에게 매우 공통적이어야 할 것은 사실입니다. 실제로 이것이 참이라고 고백하지 않는 이는 없으나, 우리 안에서는 “하나님의 율법은 놀라운 지혜”라고 느끼기는 커녕 그 반대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그 율법을 경멸하는지 모릅니다. 성경의 언어가 투박하고 저속하게 느껴지는지 모르나, 우리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의 천박함에 적응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조잡하고 비속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을 이해할 수 있도록 그분 스스로 자신을 낮추신 것입니다. 그러나 미사여구와 인간의 능변으로 채색되지 않은 이 언어에 우리를 놀래게 만들고야 말 비밀이 있습니다. 사실, 불신자들과 하나님을 경멸하는 자들이 구원 교리를 그렇게 소중히 여기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너무도 야만적이어서 그 교리의 참 의미를 결코 맛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세상 도처에서 보는 교만과 불경함이 바로 여기에서 온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마땅한 존경을 품는 자들이 거의 없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마치 속담에서 말하듯이 ‘알기 전에는 좋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리가 무엇인지 분별할 만한 지각도 판단력도 없을 정도로 얼빠진 자들이기에 그 말씀에 전혀 신경을 쓰지도 않으며, 심지어는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그런 보화를 발로 짓밟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성경에서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것이 무엇인지 한번 안 자들은 다윗과 더불어 거기에 놀라운 것들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거기엔 우리가 놀랄 만한, 우리의 정신을 집중할 만한 너무도 고상한 비밀이 있다고 말입니다.

이제 그는 바로 이런 이유에서 “내 영혼이 하나님의 증거를 지켰나이다”라고 덧붙입니다. 이것은 그가 단순히 “내가 그것을 지켰습니다”라고 말한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흔히 말하듯 진심으로 그것을 지켰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실제로 우리가 하나님의 가르침을 소중하게 여겨야 할 이유입니다. 단지 그 가르침이 탁월하여 최고의 영예를 받기에 합당하다는 견해를 갖는 것일 뿐만 아니라, 당연히 그것에 감동받으며 경외와 순종의 뿌리를 심정에 심으며 이사야 선지자가 기록한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우리가 떤다”라는 말씀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요컨대 이것이 우리가 설명해야할 이 여덟 소절의 첫 구절의 내용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에 의해 눈이 뜬 신도들은 성경이 평범한 가르침이 아니라, 온 세상이 존경하기에 합당한 지혜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율법에 자신의 하늘 비밀을 공개하신다는 사실을 한번 알고 나면, 우리 쪽에서 감동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즉 그가 하찮고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을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무한한 인자하심으로 다가오시는 이 은혜를 우리에게 베푸시지 않는 한 우리 이해력이 지각할 수 없는 훨씬 더 고상한 그의 비밀을 우리에게 여시는 방식으로 말씀하실 때 그의 말씀을 듣고 감동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입니다.

역자
박건택 | 한국외국어대학을 나와 총신대신대원과 파리신학대학, 파리10대학, 소르본느대학 등에서 공부했으며, 지금은 총신대신대원 교회사 교수로 있다. 칼뱅의 작품을 소개하는 데 전념하고 있는 그는 본지 1997년 10월호에 이어 1998년 1월호부터 칼뱅의 설교를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여 연재하고 있다